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문단 편집) === 폭약의 양 === 다른 의문점은 김현희의 폭약의 양에 대한 증언 신빙성이다. 범인 당사자의 증언으로는 컴포지트 250g이라 했는데, 사실 이 250g이 문제가 되는 것은 폭파 효과가 아니라 은닉 수단이었다. 이 폭파 과정에서 언급된 양은 C4 350g을 파나소닉 휴대용 라디오에 숨기고, 액체폭탄인 PLX 700cc는 술로 위장했다고 언급을 했다. 그런데 C4 350g이면 [[파나소닉]] 라디오의 내부를 텅 비워야 간신히 들어갔는데, 김현희는 라디오가 정상 작동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그래서 C4 350g 설이 파기되고 250g으로 줄어들어서 다시 발표되었다. 나중에 이 분량이 안기부 추정치로 드러나기도 했는데 [[정형근]] 당시 수사본부장에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5/07/005000000200507071931111.html|의하면]], 김현희에게 들은 것은 '라디오에 고체폭약을, 그리고 술병에 액체폭약을 넣었다.'라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발언을 듣고 그럼 고체는 C4이고 액체는 PLX로 결정짓고, 이 정도 폭발이 되려면 얼마나 필요한가를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추정[* 요즘처럼 수치적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했단 의미가 아니다. 쉽게 말해 실제 실험 없이 가정을 통해서 추정했단 소리.]해서 용량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즉, 비행기가 터질 만한 용량을 설정한 것이 초기의 350g, 700cc였다는 것이고, 350g이 라디오에 은닉이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라디오가 정상 작동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용량인 250g이 다시 설정된 것이다. 이 폭약량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후 청문회에서 다시 언급할 정도로 논란의 핵심에 서 있었다. 다만 고성능 폭약이라면 250g으로도 항공기 대파가 가능하다는 반론도 있으며 대파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치명적이기 때문에 이 점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도시전설]] 고증 프로그램인 '[[Mythbusters|호기심해결사]]' 2시즌의 1화([[https://youtu.be/WN-ndfF3EV8|7분 44초부터]])의 부가 검증에서는 6.5g의 고체 폭약만으로도 폭약이 부착된 동체의 좌측과 상단이 완전히 날아갔다. 폭약이 설치된 앞 좌석은 아예 좌석이 통째로 분리되어 뒷좌석 위로 올라가 있다.] 순항고도에 오른 항공기는 작은 동체 균열로도 충분히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이 여러 항공사고로 증명되었고, 여압이 깨진 것만으로 조종사가 기절하여 추락한 사고도 있었기에 350g이든 250g이든 항공기 폭파라는 사실 자체가 뒤집힐 정도의 오류는 아니다. 폭파 지점에서 좀 먼 곳의 승객은 시체가 온전할 가능성은 있지만, 폭발 지점은 뱅골만 한복판으로 한국의 서해, 동해, 남해 면적을 합친 것보다 더 넓은 바다에서, 게다가 정확히 어디서 폭파되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체를 1구라도 찾으면 그것이 더 용하다. 블랙박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태국]]-[[미얀마|버마]][* 가장 걸작인 음모론은 이 사건이 있기 전에 버마 지도자를 [[전두환]] 정부가 국빈으로 초청했고 당시 한국도 매우 가난한데 버마에 파격적인 경제적 지원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이후 버마 근처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에서 당시 서로 군인 독재 정부가 들어선 한국과 버마가 무엇인가를 꾸미지지 않았느냐는 음모론을 펼치기도 하지만, 이것은 거의 [[2차 창작]] 수준의 헛소리이다.] 국경 카렌족[* 여담이지만 [[람보 4: 라스트 블러드|람보4]]의 그 카렌족이 맞다.]의 추락 목격 신고에 따라 육지 수색에만 전념하느라 7일을 허비했다. 이후 생각을 바꿔 해상 수색으로 전환하지만 3일 만에 포기한다. 이유는 수심이 너무 깊고 유속이 빨라 정확한 위치를 추정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블랙박스를 찾기가 어렵고 [[상어]] 등에 의해 이미 훼손되었을 것이니[* 이 말을 한 말이 누구냐면 안기부 수사단장 [[정형근]]이다. 넓은 바다에서 그만큼 시체나 추락기의 동체를 찾는 건 어렵다는 뜻으로 이런 말을 했겠지만 이 표현이 너무 과장이 심했기 때문에 음모론에 불을 지폈다. 정형근은 '''"수심 2,000m~3,000m, 물살이 초속 300m, 상어가 득시글거린다."'''라고 주장했다. 허나 2004년 일본 [[아사히TV]]에서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수심 70m(북위14도 45분, 동경 95도 38분), 물살 전혀 안 빠르고, 상어는 보이지도 않는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정형근의 주장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이후 음모론은 더욱 거세졌다. 애초에 문제의 지역인 안다만 해의 평균 수심은 870m이다.] 시체를 찾을 가능성도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에어 프랑스 447편 추락 사고|2, 3km 정도 되는 수심에서도 블랙박스가 발견된 사례가 있기는 하다.]] 심해잠수정으로 엄청난 비용을 써가며 그마저도 포기 직전에 겨우 발견한 것이지만 말이다. 문제는 그 경우는 최종 추락 지점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위치를 확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애초에 무리이다.] 물론 이 시기에 조사 내용들은 아직 [[노태우]]도 대통령이 되기 전의 정부에서 한 내용이라 100%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겨우 불확실한 제보로 정글을 헤맨 것은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다만 초기에 잔해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했다는 기사가 있다. 이것이 다른 미상의 추락기체의 잔해인지 그냥 설레발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초동대응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있다. 이는 [[http://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ByKeyword.nhn#%7B%22mode%22%3A1%2C%22sort%22%3A0%2C%22trans%22%3A%221%22%2C%22pageSize%22%3A10%2C%22keyword%22%3A%22858%22%2C%22status%22%3A%22success%22%2C%22startIndex%22%3A1%2C%22page%22%3A1%2C%22startDate%22%3A%221987-01-01%22%2C%22endDate%22%3A%221987-12-31%22%7D|국내]]뿐 아니라 [[http://www.nytimes.com/1987/11/30/world/korean-plane-115-aboard-crashes-in-southeast-asia.html|뉴욕 타임즈]] 등의 외국 언론에도 분명히 나오고 이를 발표한 것은 한국이 아니라 [[태국]]이다. 그리고 애초에 어디에 추락했는지 모르는 상태인데 목격자 진술을 '불확실하다.'라고 말해 봤자 소용이 없다.] 또한 합동조사단에는 항공기 사고 조사를 담당하는 교통국의 직원들은 없었다.[* 항공 및 철도 사고 조사를 담당하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2006년에야 설립되었다.] 진실이 무엇이든 처음부터 결론을 내리고 수사한 것이라는 의심은 나올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